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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에 대해 궁금하다고.

 눈을 끔벅이던 로잔나가 처리하던 문서를 손에서 놓았다. 두 아이가 긴장한 눈을 한 채 돌아올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 년이 넘는 시간을 거듭 깨달은 사실이니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그래.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란다. 어느새 몰라보게 커진 비앙카는 조금 있으면 그의 키를 훌쩍 넘어설 것 같았다. 조금 긴 침묵. 로잔나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창가로 옮긴다. 한참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인데. 마지막으로 베로니카를 입에 담았던 순간을 떠올리자면 이 아이들이 태어나기 이전으로도 십여 년을 거슬러 가야 할 테다. 생각에 잠긴 그의 기색을 살피던 비앙카가 결국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저, 통령님. 혹 꺼내서는 안 되는 화두였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저와 리카르도는 그저……."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리는 비앙카를 바라보던 로잔나가 기어코 웃음을 터트렸다. 모르긴 몰라도, 비앙카를 부추겨 인어에 관해 묻길 주도한 것은 호기심이 많은 리카르도 측일 것이다. 손끝을 굼질대며 고개를 푹 숙이던 비앙카의 시선이 조금씩 옆으로 밀려가더니, 제 뒤에서 눈치를 보고 선 리카르도를 향해 쏟아졌다. 내가 하지 말자고 했지. 조그만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로잔나는 가만 두 아이를 바라보다 책상을 가볍게 톡톡, 두드리더니 이른다.

 "앉으렴."

 "……?"

 "인어에 대해 듣고 싶다며? 해줄 테니 앉아보거라."

 순식간에 안색이 상기된 아이들이 다가와 접견석의 푹신한 가죽 소파 위로 몸을 실었다. 빛나는 두 쌍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로잔나는 지그시 눈을 감는다. 아주 오랜 추억을 회고하기 위함이다. 아득한 과거의 바다에서 밀려온 해풍이 로잔나의 몸을 휘감는 것만 같았다. 여린 백색의 머리칼이 바람에 힘차게 굽이치고, 그의 손에는 옛적 짧고 긴 항해마다 반드시 지니고 다니던 나침반이 들렸다. 길고 풍성한 흰 속눈썹을 내리며 감겼던 눈꺼풀이 도로 또렷하게 뜨인다. 에메랄드빛의 눈 안으로 미지의 파도가 응집했다.

 "바다는,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아. 그리고 그건 인어 역시 마찬가지다."

 

 콘코드 호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빌라르 부근 해역을 한참이나 떠다닌 탓도 있을 테지만, 선상의 소음은 지극히 예사로워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유일한 변수가 있다면 그것은 메인 마스트 위에 기어올라 바다 너머를 한가롭게 내다보는 해적선장, 그를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선 3함대장 비앙카 데 메디치의 모습이다. 선원들은 살살 눈치를 보며 그의 곁을 숨죽여 지난다. 보다 못한 비앙카가 입을 열었다.

 "리카르도."

 "응~."

 "내려와라. 언제까지 거기서 노닥거릴 참이냐?"

 핀잔에 희미하게 꿍얼거리는 소리가 돌아오나 싶더니, 리카르도의 몸이 휙, 하고 떨어져 선박 위로 안착한다. 그는 몸을 쭉 늘여 기지개를 한 번 켜더니 장난스럽고 느릿느릿한 어조로 대꾸했다.

 "언제까지긴? 시야에 다른 함선이 들어올 때까지지. 왜, 내가 붙어있질 않으면 심심하냐?"

 "……닥쳐. 애초에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누구 때문인데?"

 서늘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꾸한 비앙카가 그를 한 번 흘기더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솜털 같은 구름이 떠다니는 한가로운 배경 위로 간혹 갈매기가 떠다녔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날씨는 최상의 '맑음'이다. 즉슨 적어도 항해를 마치고 육지에 도착하기 이전까지는 이상 기후를 염려하지 않아도 무방하리란 뜻이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별개로 선원을 책임지고 감독해야 할 항해사가 이토록 빠져있는 모양새라니, 아무리 해적이라곤 하지만. 수긍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선장이 매 항해마다 이런 식인데 해신께서 노하지 않는다니, 놀라울 지경이군."

 "야아,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말이 씨가 된단다."

 "언젠가는 해신이 널 잡아갈 거다. 이 말이 반드시 씨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도록 하지."

 "비앙카!"

 정말 너무한 것 아니야? 그가 팔짱을 끼워 보이며 툴툴거렸다. 이방인에게는 소문만 무성한 전설이나 구전 동화, 일개 민간 신앙처럼 들릴 법도 했지만, 사르디나인들에게 해신이란 엄밀히 실존하는 존재인 동시에 두려워하고 공경해야 마땅할 대상에 속했다. 비앙카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을 테다. 한데, 억하심정으로라도 그리 오싹한 말을 하다니. 리카르도는 오래 늘어져 있어 뻣뻣해진 등허리를 쭉 늘이며 예사롭게도 정나미가 없는 3함대장의 안색을 힐금거린다. 그새 바다 너머로 시선을 돌린 그의 표정이 퍽 심각해 보였다.

 "뭐야, 왜 그래?"

 무심결처럼 중얼거린 리카르도의 시선 역시 서둘러 그의 것을 따랐다. ―…….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두 사람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물감을 덧입힌 양 짙고 푸른 하늘 위로 흉흉한 기세를 띤 적란운이 밀려오고 있었다. 구름이 볕을 가리자 순식간에 배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젠장, 이렇게 갑자기?"

 잠시 말이 없던 비앙카가 침착한 음성으로 그를 채근했다.

 "리카르도, 꾸물거리지 말고 폭풍우를 대비해라.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려."

 "그래, 알겠다고. 너는 쓸데없이 비 맞지 말고 들어가 있어라."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나는 신경 쓸 필요 없으니 어서,"

 사소한 실랑이가 오가던 중, 벼락이 내리며 번쩍이더니 뒤이어 천둥소리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거센 비가 쏟아져 내리며 바람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뒤로는 연신 파도가 뱃전을 후려치는 통에, 보다 못한 리카르도가 허둥대는 조타수를 물리고 직접 키를 잡아채야 했다. 해류가 심상치 않았으므로 그는 지체 없이 육지로 귀환할 작정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소리에 말소리가 묻히자 비앙카가 다급한 음성으로 외쳤다.

 "리카르도! 어디로 가려는 거지?"

 "육지에 닿는 것이 우선이니 브리제아로 향할 거다!"

 마찬가지로 높게 외치며 대답한 리카르도가 제 곁으로 다가선 피핀에게 무어라 이르더니 왼방향으로 힘껏 키를 밀었다. 불안정하던 배의 몸체가 급격하게 휘는 선로를 따라 기울어졌다. 모두가 일제히 비틀거리거나 기울어진 방향으로 쏟아지는 물자를 수습하기 바쁜 와중, 난간 옆에 서 있던 어린 견습 선원 하나가 기우뚱대다 발을 헛디디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선체 바깥으로 떨어져 버렸다. 키를 조종하는 리카르도를 대신해 해적들을 지휘하던 비앙카가 그를 붙잡기 위해 다가섰으나, 한발 늦었다. 파도는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소년을 집어삼켰다.

 "이런 젠장!"

 "비앙카! 무슨 일인데 그래?"

 "선원 하나가……!"

 삽시간에 어두워진 하늘 아래 바다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기세로 검게 물결쳤다. 선체는 곧이어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휘청이는 몸체와 함께 머릿속마저 엉망으로 뒤섞였다. 비앙카는 금세공된 나침반을 꺼내 다급하게 방향을 가늠했으나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긴박해지자, 그의 머릿속에서 로잔나의 목소리가 주마등처럼 되살아난다. ―바다는 인간에게 친절하지 않아. 하나 매 순간 귀중했던 그 분의 무거운 조언이 이번만큼은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뼈저리게 실감해온 사실이 아니던가? 이제 와서 바다의 불친절함을 경계한다고 해봤자, 도통 빠져나갈 곳은…….

 '……그리고 그건, 인어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끔 바다가 인간에게 지나칠 만큼 불공정하거나 박정한 순간, 인어의 기도가 바다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지.'

 그때, 흐트러진 시야 너머로 수면 위에 떠오른 푸른 그림자가 비쳤다. 비앙카는 잠시 눈을 의심했다. 그것은 인간의 형체처럼 보였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은 아니었다. 창백하다기보다 새파란 살갗, 푸른 머리카락은 길게 흘러내리고…… 그 사이로 솟아난 지느러미가 어렴풋이 눈에 띄었다. 품 안에는 물밑으로 가라앉았던 소년이 들려있다. 인어. 인어가 아닐 리 없다.

 인어가 성난 파도를 헤치고 점점 선체를 향해 다가온다. 비앙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친 물결과 성난 빗줄기가 조금씩 잠잠해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느낄 수 있었다.

 

 

 "……휘유~ 정말 죽는 줄 알았네."

 브리제아의 어느 한적한 해변 앞, 리카르도는 늘어지게 한숨을 쉬며 비앙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모은 두 다리를 끌어안은 채 생각에 잠겨있던 비앙카가 그를 힐끗 바라보더니 도로 고개를 돌린다. 리카르도는 심상치 않은 안색을 살피며 잠시 그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한참 뒤에야 조심스러운 물음이 온다.

 "많이 놀란 건 이해하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안드레아 녀석이 죽을 뻔했던 건 나도 정말 오싹한데…… 뭐 결과적으로는 네가 구해냈지 않냐? 인명피해 없이 육지에 도착한 것만으로 천만다행이지."

 "……내가 구해낸 게 아니야. 그리고, 애초에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어린 소년을 해적질하는 배에 태워서 데리고 다니는 거냐? 정말이지 네 녀석은 그 경각심 없이 맹동을 일삼는 태도가……."

 "야, 야. 나라고 어린애한테 노략질 가르치는 게 마냥 유쾌한 줄 아냐? 오갈 데 없는 녀석을 거두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데리고 다니는 거라고."

 그의 해명에 비앙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금 침묵한다. 리카르도가 물었다.

 "……그런데, 네가 구한 게 아니라고? 그럼 누가?"

 "……있지, 리카르도."

 ―응? 나직하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린다. 호명 이후에도 비앙카는 도무지 현실감이 없다는 얼굴을 하며 한참을 침묵하다, 겨우 반쯤 홀린 사람처럼 감상에 잠긴 목소리로 입을 떼어냈다.

 "나 말이야……. 인어를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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