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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이 낮게 뜬 늦은 밤이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도 몇몇 선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이 들었다. 파도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며 로잔나가 직접 수습 선원을 교육하느라 소란스러울 때에도,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비앙카는 깰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얘. 비앙카.”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 로잔나는 잠든 비앙카를 깨워 갑판으로 데리고 나왔다. 잠이 덜 깼는지 조금 비틀거리며 옷소매로 눈가를 비비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애였기에, 선원 중 일부는 로잔나가 비앙카의 어느 모습에서 기량을 추측했는지 의문을 가졌다.

 비앙카는 자신이 왜 불려 나왔는지는 물론이고,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로잔나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했다. 따라서 올려다본 하늘에서는….

 하늘에서는, 별이 쏟아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비앙카는 눈가를 가리고 있던 소매를 내리고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날, 자신의 미래가 완전히 바뀔 것을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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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디나의 바다에서는 독특한 냄새가 난다. 바다 자체의 성분이야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워낙 다양한 물자를 실은 배들이 오가며 흔적을 남긴 탓이다. 비앙카는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지워지고, 화약 냄새만 남은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이 전쟁은 언제 즈음 끝이 날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물음은 오늘도 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전쟁에서 군인들을 싸우게 하는 것이 옳은가? 진정으로 승리하는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우리가 갈루스를 동부 대륙으로, 그들이 있던 곳으로 물러나게 만든다고 해서 쓰러진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전장에서 의지할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 자신을 믿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비앙카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 자신을 믿었지만, 아주 가끔은 자신이 널빤지 하나를 붙잡고 망망대해를 떠도는 것 같다고 느꼈다. 전쟁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했던 탓이다. 사관학교를 다닐 때 배웠던 지식이나 사르디나가 아직 평화롭던 시절 따라나섰던 항해에서 익힌 습관 같은 것은 전장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데에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사람이 이렇게 빨리 죽는다고, 혹은 이렇게 고통스러워하며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데도 숨이 끊어지지를 않는다고…. 평생 익숙해지지는 못할 것 같았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지치기만 하는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비앙카는 선두에 선 배에서 사력을 다하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과연 그 일이 가능하기는 할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멀리서 갈루스와 사르디나, 어디의 소속도 아닌 배가 다가왔다.

 “너무 늦은 건 아니었으면 좋겠군. 아발론의 군주다. 사르디나와 함께하고 싶어.”

 군주의 문양을 확인한 이후, 비앙카는 안도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어느 하루는 사르디나의 용맹한 전사들이 갈루스 제국의 군인들을 더 많이 베어냈다면, 다음 날은 사르디나 국민들이 해변에서 더 먼 대피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그들이 도착한 이후 전장의 상황은 놀랍도록 나아졌다. 하지만 뺨을 스치고 갔던 마력포로 인해 입은 상처가 나아가는 동안에도 자신의 손으로 조국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무력감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앙카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리카르도는 그런 비앙카를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이름을 불러도 듣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고, 핀잔을 들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친 장난에도 고개만 까딱이기만 했다.

 리카르도가 아는 비앙카는 빳빳하게 다린 제복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지만, 그 엄격함의 대상은 늘 타인보다 자신을 얽매고 있었다. 허리를 세우고 하늘이나 바다를 응시할 때면 자연스레 그가 그리는 미래를 상상하게 만들고, 그곳에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는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사르디나에서 메디치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메디치가 곧 사르디나이며, 사르디나가 곧 메디치라는 인식이 일반적일 정도이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지고 자라온 아이들은 비슷한 방식으로 그에게 닥쳐오는 의무들에 저항하고, 리카르도는 그런 삶의 형태를 잘 알았다. 그렇기에 비앙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리카르도는 그와 쉽게 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네가 비앙카냐?”

 비앙카는 고개를 돌려 리카르도를 마주 보았다. 살짝 곱슬거리는, 탁한 금빛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흔들렸다. 파란 눈에서는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리카르도는 아직도 비앙카가 그때 무어라 답을 했었는지 몰랐다. 그 눈에 담긴 것들을 읽어내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평생 가지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던 그 올곧음, 그리고….

 그 둘은 친해졌다. 하지만 리카르도가 생각했던 방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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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앙카가 이번에 겪은 것은 그가 겪었던 것 중 가장 큰 패배였다. 하지만 첫 패배를 안겨주었던 것은 리카르도였다. 리카르도는 그렇기에, 비앙카에게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리카르도에게 비앙카는….

 “비앙카. 네 이정표가 로잔나 통령님이라는 건 알아. 그럼… 네 나침반 정도는 내가 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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